[시사IN]'이 아픈 몸 이끌고 출근하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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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집배노조 작성일17-10-09 13:16 조회3,88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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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픈 몸 이끌고 출근하라네'
전혜원 기자 입력 2017.09.27. 09:47 수정 2017.09.27. 17:08 댓글 136개
2016년 이후 우체국 집배원들의 근무 중 뇌심혈관계 질환, 자살, 업무 중 교통사고 사망자가 17명에 이른다. 인력 부족에 따른 장시간 노동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9월5일 서광주우체국 집배원 이길연씨(53)가 자택에서 번개탄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이씨가 남긴 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두렵다. 이 아픈 몸 이끌고 출근하라네. 사람 취급 안 하네. 가족들 미안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동하씨 제공 9월5일 숨진 채 발견된 서광주우체국 집배원 이길연씨의 유서.
16년차 집배원인 이씨는 지난 8월10일 배달 중 교통사고를 당해 허벅지에 타박상을 입었다. 전치 2주 진단을 받고 2주간 일반 병가를 썼다. 그래도 낫지 않자 1주 진단을 더 받아 병가를 냈다. 병가 3주차가 끝나는 8월31일 서광주우체국 집배실장은 이씨에게 전화를 걸어 건강 상태와 추가 병가 사용 여부를 물었다. 이씨는 병가를 소진한 뒤 금요일(9월1일)과 월요일(9월4일) 이틀간 연차를 더 붙여 쉬었다. 그리고 9월5일, 연락이 닿지 않는 이씨를 찾으러 온 우체국 관리자들과 경찰이 자택에서 숨진 이씨를 발견했다.
집배원들이 자꾸 죽어나간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집배노조와 한국노총 전국우정노조의 자료를 취합하면, 2016년부터 2017년 9월5일까지 사망한 집배원 수만 17명이다. 뇌심혈관계 질환 8명, 자살 6명, 업무 중 교통사고 3명이다(위 표 참조). 우정사업본부의 집계와 종합해보면 2013년부터 2017년 9월5일까지 4년여 동안 근무 중 뇌심혈관계 질환, 자살, 교통사고로 사망한 집배원 수가 모두 47명이다. 한 해 10명 가까운 집배원이 일하다가 죽었다.
일련의 집배원 죽음이 이들의 노동환경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집배원들의 노동시간은 연간 2864.9시간이다(<집배원 과로사 근절대책 마련을 위한 실태조사>, 한국노동연구원 이정희·박시영, 2017). 2015년 말 기준 OECD 연간 평균 1766시간은 물론 한국 취업자 1인당 연간 평균 노동시간 2113시간 역시 훌쩍 뛰어넘는 수치이다. 이들은 하루 평균 10.9시간, 1주일 평균 55.2시간을 일한다.
대전지방노동청 조사 결과 관할 우체국 4곳의 평균 초과노동시간은 월 53.5~ 64.4시간이었다. 명절이 있는 9월에는 초과노동시간이 84.6시간, 연초인 1월에는 초과노동시간이 77시간으로 치솟았다. 특히 대전 유성우체국은 지난해 9월 평균 초과노동시간이 103.9시간을 기록했다. 연평균 연차휴가 사용일은 2.7일에 그쳤다.
‘이 아픈 몸 이끌고 출근하라네’라는 유언을 남긴 이씨의 죽음도 이런 노동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동료와 유족의 증언을 들어보면, 서광주우체국은 공무상 요양 신청은커녕 입원 초기부터 출근을 압박했다. 이씨와 가까이 지냈고 이씨가 다친 8월10일과 12일 병원을 방문했던 서광주우체국 집배원 동료 유 아무개씨는 “8월10일 저녁에 병원에 갔는데 일어서지 못해서 휠체어를 빌려다 화장실에 같이 갔다. 진통제를 맞아도 통증이 심해 앞으로 배달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걱정하더라. 8월12일 병원을 다시 찾았는데, 우체국에서 8월16일부터 나오라고 했다며 근심했다. 그때도 허리 밑에 피가 뭉쳐 땡땡 부어 있었다. 아픈데 무슨 일을 하냐며 나가지 말라고 했다”라고 말했다.
이씨의 아들 이동하씨는 “아버지와 같은 병실에 입원한 환자 말에 따르면, 우체국으로 예상되는 상대에게 전화가 오면 아무 말 못하다가 끊고는 눈물을 훔쳤다고 하더라. 오는 12월 서광주우체국이 ‘무사고 1000일’을 앞두고 있어서 공무상 재해 신청이 어렵다고 했다는 동료 증언도 나왔다”라고 말했다. 서광주우체국 관계자는 이씨의 출근을 종용했다는 사실을 부인했다. “통상적으로 진단서상 병가 기간이 끝나고 공무상 요양 신청을 하는 경우가 많다. 중간 중간 서류 떼어서 신청하려면 시간도 걸리고 번거롭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필요하다면 신청할 수 있었고 안내도 다 했는데 본인이 안 한 것이다.”
이런 해명은 공무원연금법은 물론 이씨가 추가 병가를 내려 했던 정황과 맞지 않는다. 유족·동료들과 이 사건 진상조사를 진행 중인 김성진 변호사는 “이씨는 병가를 2주 더 쓰길 원해 8월28일 치료를 요한다는 소견서를 다니던 병원에서 발급받았다. 하지만 서광주우체국은 소견서가 아닌 진단서가 필요하다며 거부했고, 이씨는 연가 기간에 진단서를 끊어 추가로 병가를 내려다 결국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이명익 이길연씨의 자살 소식을 듣고 9월11일 동료 집배원들이 우정사업본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며 영정을 우체통에 붙이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집배원들은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있다. 집배원 대부분이 공무원 보수규정과 복무규정 적용을 받는 공무원이기에 근로기준법 적용이 배제된다. 공무원이 아닌 집배원들 역시 근로기준법 59조에 따른 근로시간 특례업종에 해당되는 통신업 종사자로서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법 밖에서 이들의 업무 부담은 점점 커졌다. 편지 물량은 매년 줄고 있지만 등기·소포 물량은 늘었다. 2015년 9월12일부터 토요일 배달 업무가 재개되면서 노동시간도 더 늘었다. 당초 근무 희망자를 우선 배치한다고 했지만 희망자가 부족해 순번제로 운영 중이다. 신도시가 늘면서 배달지가 늘어난 것도 부담이 커진 요인이다.
이진우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부장(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은 “장시간 노동과 뇌심혈관계 질환의 관계를 입증한 연구가 많다. 업무 중 교통사고도 일정 부분 장시간 노동의 영향일 가능성이 있다. 자살의 경우도 ‘과로 자살’이 확산되는 사회적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지난해의 경우 뇌심혈관계 질환에 따른 집배원들의 ‘돌연사’가 두드러졌다. 올해는 자살이 이어졌다. 지난 7월 안양우체국 앞에서 분신 시도해 사망한 집배원 원 아무개씨가 대표적이다. 원씨는 유서를 따로 남기지 않았다. 최근 자살한 이씨는 유서를 남겼다. 집배원 노동문제를 오래 들여다본 전문가들은 이씨의 유서가 여러 면에서 상징적이라고 말한다. 이용우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는 “이 사건이 상징적으로 이슈화되는 이유는 지금껏 우정사업본부가 보여준 모습의 축소판이기 때문이다. 업무 중 교통사고를 당하는 집배원이 많지만 우정사업본부는 산재에 무감각하고 데이터를 남기기 싫어했다. 인력이 부족하니 치유가 안 된 노동자에게 출근을 종용했고, 스트레스를 못 이긴 노동자가 자살했다. 이 전 과정을 그 짧은 유서가 응축했기 때문에 이번만은 짚고 넘어가자는 공감대가 시민사회와 노동단체에 형성됐다”라고 말했다.
“요즘 거기 일까지 해야 되니까….” 이씨가 사망한 지 일주일이 지난 9월12일, 서광주우체국 집배원 김 아무개씨는 우편물을 추리며 말했다. 그는 숨진 이씨와 같은 조에 속해 있었다. 10명이던 조에서 이길연씨가 8월10일 다치고 9월5일 숨진 채 발견된 뒤까지도, 남은 9명이 이씨의 일을 나눠서 하고 있었다. “조원이 다치면 당연히 가서 푹 쉬고 나오라고 해야 하는데 저희들은 그게 안 된다. 한 사람이 빠지면 그대로 우리들이 나눠서 해야 되니까. 인간의 도리도 할 수 없는 게 슬프다.”
아픈 집배원을 압박하는 ‘겸배’ 시스템
이처럼 집배 인원에서 누군가 빠지면 다른 집배원들이 배달 몫을 나눠 맡는 것을 ‘겸배’라고 한다. 이씨가 느낀 압박감의 핵심에도 겸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씨의 아들 이동하씨는 “아버지가 계속 회사를 못 나가니 회사에서도 팀에서도 나쁜 놈이 되어버렸다고 했다”라고 말했다. 이씨가 속한 조의 한 집배원은 결석 수술 뒤 통증에도 쉬지 못하고 원룸 건물의 계단에서 데굴데굴 구르면서까지 참으며 일했다고 한다.
왜 예비 인력을 확보하지 않을까. 우정사업본부는 이미 4%의 예비 인력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이른바 ‘집배부하량 시스템’에 그것이 반영돼 있다는 것이다. 집배부하량 시스템이란 집배원의 업무 평준화를 위해 만든 시스템이다. 편지 등 일반통상 2.1초, 등기 28초 등 세부 단위업무를 구분하고 각각의 표준시간을 초단위로 설정해 업무시간을 계산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김효 전국집배노조 정책국장은 집배원 업무 특성상 적용하기 부적절한 방식이라고 말한다. 그는 “각각의 단위업무를 마치고 대기시간 없이 바로 또 다른 단위업무를 하기가 물리적으로 쉽지 않다. 편지 배달을 위한 도보 이동시간은 0초로 되어 있고, 특별 소통기간 및 토요 택배 배달 업무에 대한 적정 소요인력은 산출되지 않는다. 결국 집배원의 노동시간을 증가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시사IN 이명익 9월11일 ‘집배노동자 장시간 노동철폐 및 과로사·자살방지 시민사회 대책위원회’의 기자회견 모습.
부하량 시스템상 업무가 늘어도 바로 인력이 충원되지 않는다. 서광주우체국 관계자는 “부하량 시스템상 1이 훨씬 넘으면 조정해주고 1에 근접하면 서로 나눠 한다”라고 말했다(부하량 시스템상 1이면 1인당 적정한 물량을 배달하고 있다는 뜻이다. 1을 초과할수록 1인이 감당하는 물량이 많음을, 즉 인력이 부족함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집배원 김 아무개씨는 “답이 1.2인데 0.9가 나오도록 문제지를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나도 업무가 40분쯤 늘어 빠듯한데, 다쳐서 한 달 쉬고 아직 아픈 데다 업무량도 늘어난 상황에서 이씨는 출근 자체가 상당한 압박이었을 거다. 집배원들은 한계에 내몰리고 있다. 여건이 안 되는데 우리한테 여유 갖고 해라, 교통사고 조심해라 하지만 이론적인 얘기다. 숨만 꼴딱꼴딱 쉬고 있다.”
우정사업본부는 부하량 시스템에 따르면 지금도 인력이 남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이 시스템에 의거해 노동시간을 줄여가겠다고 했다(우정사업본부는 노동시간을 각종 조사 결과보다 훨씬 더 적게 보고 있다). 지난 7월 한국노동연구원의 <집배원 과로사 근절대책 마련을 위한 실태조사>에서, 조사 대상 집배원 73.8%는 ‘집배부하량 시스템에서 내 업무량이 제대로 반영되어 있지 않다’라고 느꼈다. 2015년 기준 우리나라 집배원 1인당 담당 가구 수는 1160호다. 미국 514호, 일본 378호와 비교되는 수치다. 집배원 1인당 담당 인구수도 우리나라 2763명, 미국 1400명, 일본 905명이다.
이씨의 자살 뒤 우정사업본부는 “고인은 나이가 많은 편이고, 평소에도 업무처리가 빠르지 않아 같은 팀 동료 집배원들은 배달 여건이 가장 수월한 배달 구역을 배정했으며, 우편물 구분 공동 작업 및 집배 구역 변경도 제외하는 등의 배려를 하였음”이라는 해명자료를 냈다. ‘느릿느릿 편하게 일했다’는 우정사업본부 해명은 그의 가족 및 동료들의 설명과 다르다. 숨진 이씨는 물량이 많아 가족이나 휴직 중인 동료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점심시간에는 화단에 쭈그려 앉아 김밥을 먹기도 했다. 명절 때는 링거를 맞으며 배달을 다녔다. 최근에는 담당 구역이 늘었다. ‘살인적인 중노동’이 예상되는 추석 명절을 앞두고 그는 (우정사업본부 표현에 따르면) “몸 상태와 추가 병가 사용 여부를 묻는” 전화를 받은 뒤 목숨을 끊었다.
유가족과 이병철 우정사업본부장 직무대행은 9월22일 고 이길연 집배원의 사망과 관련해 우정사업본부 사과, 진상조사위원회 구성, 자료 제출과 순직처리 협조, 책임자 처벌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합의했다. 유가족은 합의 이행이 온전히 완료될 때까지 장례를 치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시사IN 신선영 자살한 이길연씨의 동료 집배원이 한 아파트 단지에서 집배 업무를 하고 있다.
전혜원 기자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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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픈 몸 이끌고 출근하라네'
전혜원 기자 입력 2017.09.27. 09:47 수정 2017.09.27. 17:08 댓글 136개
2016년 이후 우체국 집배원들의 근무 중 뇌심혈관계 질환, 자살, 업무 중 교통사고 사망자가 17명에 이른다. 인력 부족에 따른 장시간 노동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9월5일 서광주우체국 집배원 이길연씨(53)가 자택에서 번개탄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이씨가 남긴 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두렵다. 이 아픈 몸 이끌고 출근하라네. 사람 취급 안 하네. 가족들 미안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동하씨 제공 9월5일 숨진 채 발견된 서광주우체국 집배원 이길연씨의 유서.
16년차 집배원인 이씨는 지난 8월10일 배달 중 교통사고를 당해 허벅지에 타박상을 입었다. 전치 2주 진단을 받고 2주간 일반 병가를 썼다. 그래도 낫지 않자 1주 진단을 더 받아 병가를 냈다. 병가 3주차가 끝나는 8월31일 서광주우체국 집배실장은 이씨에게 전화를 걸어 건강 상태와 추가 병가 사용 여부를 물었다. 이씨는 병가를 소진한 뒤 금요일(9월1일)과 월요일(9월4일) 이틀간 연차를 더 붙여 쉬었다. 그리고 9월5일, 연락이 닿지 않는 이씨를 찾으러 온 우체국 관리자들과 경찰이 자택에서 숨진 이씨를 발견했다.
집배원들이 자꾸 죽어나간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집배노조와 한국노총 전국우정노조의 자료를 취합하면, 2016년부터 2017년 9월5일까지 사망한 집배원 수만 17명이다. 뇌심혈관계 질환 8명, 자살 6명, 업무 중 교통사고 3명이다(위 표 참조). 우정사업본부의 집계와 종합해보면 2013년부터 2017년 9월5일까지 4년여 동안 근무 중 뇌심혈관계 질환, 자살, 교통사고로 사망한 집배원 수가 모두 47명이다. 한 해 10명 가까운 집배원이 일하다가 죽었다.
일련의 집배원 죽음이 이들의 노동환경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집배원들의 노동시간은 연간 2864.9시간이다(<집배원 과로사 근절대책 마련을 위한 실태조사>, 한국노동연구원 이정희·박시영, 2017). 2015년 말 기준 OECD 연간 평균 1766시간은 물론 한국 취업자 1인당 연간 평균 노동시간 2113시간 역시 훌쩍 뛰어넘는 수치이다. 이들은 하루 평균 10.9시간, 1주일 평균 55.2시간을 일한다.
대전지방노동청 조사 결과 관할 우체국 4곳의 평균 초과노동시간은 월 53.5~ 64.4시간이었다. 명절이 있는 9월에는 초과노동시간이 84.6시간, 연초인 1월에는 초과노동시간이 77시간으로 치솟았다. 특히 대전 유성우체국은 지난해 9월 평균 초과노동시간이 103.9시간을 기록했다. 연평균 연차휴가 사용일은 2.7일에 그쳤다.
‘이 아픈 몸 이끌고 출근하라네’라는 유언을 남긴 이씨의 죽음도 이런 노동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동료와 유족의 증언을 들어보면, 서광주우체국은 공무상 요양 신청은커녕 입원 초기부터 출근을 압박했다. 이씨와 가까이 지냈고 이씨가 다친 8월10일과 12일 병원을 방문했던 서광주우체국 집배원 동료 유 아무개씨는 “8월10일 저녁에 병원에 갔는데 일어서지 못해서 휠체어를 빌려다 화장실에 같이 갔다. 진통제를 맞아도 통증이 심해 앞으로 배달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걱정하더라. 8월12일 병원을 다시 찾았는데, 우체국에서 8월16일부터 나오라고 했다며 근심했다. 그때도 허리 밑에 피가 뭉쳐 땡땡 부어 있었다. 아픈데 무슨 일을 하냐며 나가지 말라고 했다”라고 말했다.
이씨의 아들 이동하씨는 “아버지와 같은 병실에 입원한 환자 말에 따르면, 우체국으로 예상되는 상대에게 전화가 오면 아무 말 못하다가 끊고는 눈물을 훔쳤다고 하더라. 오는 12월 서광주우체국이 ‘무사고 1000일’을 앞두고 있어서 공무상 재해 신청이 어렵다고 했다는 동료 증언도 나왔다”라고 말했다. 서광주우체국 관계자는 이씨의 출근을 종용했다는 사실을 부인했다. “통상적으로 진단서상 병가 기간이 끝나고 공무상 요양 신청을 하는 경우가 많다. 중간 중간 서류 떼어서 신청하려면 시간도 걸리고 번거롭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필요하다면 신청할 수 있었고 안내도 다 했는데 본인이 안 한 것이다.”
이런 해명은 공무원연금법은 물론 이씨가 추가 병가를 내려 했던 정황과 맞지 않는다. 유족·동료들과 이 사건 진상조사를 진행 중인 김성진 변호사는 “이씨는 병가를 2주 더 쓰길 원해 8월28일 치료를 요한다는 소견서를 다니던 병원에서 발급받았다. 하지만 서광주우체국은 소견서가 아닌 진단서가 필요하다며 거부했고, 이씨는 연가 기간에 진단서를 끊어 추가로 병가를 내려다 결국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이명익 이길연씨의 자살 소식을 듣고 9월11일 동료 집배원들이 우정사업본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며 영정을 우체통에 붙이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집배원들은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있다. 집배원 대부분이 공무원 보수규정과 복무규정 적용을 받는 공무원이기에 근로기준법 적용이 배제된다. 공무원이 아닌 집배원들 역시 근로기준법 59조에 따른 근로시간 특례업종에 해당되는 통신업 종사자로서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법 밖에서 이들의 업무 부담은 점점 커졌다. 편지 물량은 매년 줄고 있지만 등기·소포 물량은 늘었다. 2015년 9월12일부터 토요일 배달 업무가 재개되면서 노동시간도 더 늘었다. 당초 근무 희망자를 우선 배치한다고 했지만 희망자가 부족해 순번제로 운영 중이다. 신도시가 늘면서 배달지가 늘어난 것도 부담이 커진 요인이다.
이진우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부장(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은 “장시간 노동과 뇌심혈관계 질환의 관계를 입증한 연구가 많다. 업무 중 교통사고도 일정 부분 장시간 노동의 영향일 가능성이 있다. 자살의 경우도 ‘과로 자살’이 확산되는 사회적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지난해의 경우 뇌심혈관계 질환에 따른 집배원들의 ‘돌연사’가 두드러졌다. 올해는 자살이 이어졌다. 지난 7월 안양우체국 앞에서 분신 시도해 사망한 집배원 원 아무개씨가 대표적이다. 원씨는 유서를 따로 남기지 않았다. 최근 자살한 이씨는 유서를 남겼다. 집배원 노동문제를 오래 들여다본 전문가들은 이씨의 유서가 여러 면에서 상징적이라고 말한다. 이용우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는 “이 사건이 상징적으로 이슈화되는 이유는 지금껏 우정사업본부가 보여준 모습의 축소판이기 때문이다. 업무 중 교통사고를 당하는 집배원이 많지만 우정사업본부는 산재에 무감각하고 데이터를 남기기 싫어했다. 인력이 부족하니 치유가 안 된 노동자에게 출근을 종용했고, 스트레스를 못 이긴 노동자가 자살했다. 이 전 과정을 그 짧은 유서가 응축했기 때문에 이번만은 짚고 넘어가자는 공감대가 시민사회와 노동단체에 형성됐다”라고 말했다.
“요즘 거기 일까지 해야 되니까….” 이씨가 사망한 지 일주일이 지난 9월12일, 서광주우체국 집배원 김 아무개씨는 우편물을 추리며 말했다. 그는 숨진 이씨와 같은 조에 속해 있었다. 10명이던 조에서 이길연씨가 8월10일 다치고 9월5일 숨진 채 발견된 뒤까지도, 남은 9명이 이씨의 일을 나눠서 하고 있었다. “조원이 다치면 당연히 가서 푹 쉬고 나오라고 해야 하는데 저희들은 그게 안 된다. 한 사람이 빠지면 그대로 우리들이 나눠서 해야 되니까. 인간의 도리도 할 수 없는 게 슬프다.”
아픈 집배원을 압박하는 ‘겸배’ 시스템
이처럼 집배 인원에서 누군가 빠지면 다른 집배원들이 배달 몫을 나눠 맡는 것을 ‘겸배’라고 한다. 이씨가 느낀 압박감의 핵심에도 겸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씨의 아들 이동하씨는 “아버지가 계속 회사를 못 나가니 회사에서도 팀에서도 나쁜 놈이 되어버렸다고 했다”라고 말했다. 이씨가 속한 조의 한 집배원은 결석 수술 뒤 통증에도 쉬지 못하고 원룸 건물의 계단에서 데굴데굴 구르면서까지 참으며 일했다고 한다.
왜 예비 인력을 확보하지 않을까. 우정사업본부는 이미 4%의 예비 인력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이른바 ‘집배부하량 시스템’에 그것이 반영돼 있다는 것이다. 집배부하량 시스템이란 집배원의 업무 평준화를 위해 만든 시스템이다. 편지 등 일반통상 2.1초, 등기 28초 등 세부 단위업무를 구분하고 각각의 표준시간을 초단위로 설정해 업무시간을 계산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김효 전국집배노조 정책국장은 집배원 업무 특성상 적용하기 부적절한 방식이라고 말한다. 그는 “각각의 단위업무를 마치고 대기시간 없이 바로 또 다른 단위업무를 하기가 물리적으로 쉽지 않다. 편지 배달을 위한 도보 이동시간은 0초로 되어 있고, 특별 소통기간 및 토요 택배 배달 업무에 대한 적정 소요인력은 산출되지 않는다. 결국 집배원의 노동시간을 증가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시사IN 이명익 9월11일 ‘집배노동자 장시간 노동철폐 및 과로사·자살방지 시민사회 대책위원회’의 기자회견 모습.
부하량 시스템상 업무가 늘어도 바로 인력이 충원되지 않는다. 서광주우체국 관계자는 “부하량 시스템상 1이 훨씬 넘으면 조정해주고 1에 근접하면 서로 나눠 한다”라고 말했다(부하량 시스템상 1이면 1인당 적정한 물량을 배달하고 있다는 뜻이다. 1을 초과할수록 1인이 감당하는 물량이 많음을, 즉 인력이 부족함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집배원 김 아무개씨는 “답이 1.2인데 0.9가 나오도록 문제지를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나도 업무가 40분쯤 늘어 빠듯한데, 다쳐서 한 달 쉬고 아직 아픈 데다 업무량도 늘어난 상황에서 이씨는 출근 자체가 상당한 압박이었을 거다. 집배원들은 한계에 내몰리고 있다. 여건이 안 되는데 우리한테 여유 갖고 해라, 교통사고 조심해라 하지만 이론적인 얘기다. 숨만 꼴딱꼴딱 쉬고 있다.”
우정사업본부는 부하량 시스템에 따르면 지금도 인력이 남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이 시스템에 의거해 노동시간을 줄여가겠다고 했다(우정사업본부는 노동시간을 각종 조사 결과보다 훨씬 더 적게 보고 있다). 지난 7월 한국노동연구원의 <집배원 과로사 근절대책 마련을 위한 실태조사>에서, 조사 대상 집배원 73.8%는 ‘집배부하량 시스템에서 내 업무량이 제대로 반영되어 있지 않다’라고 느꼈다. 2015년 기준 우리나라 집배원 1인당 담당 가구 수는 1160호다. 미국 514호, 일본 378호와 비교되는 수치다. 집배원 1인당 담당 인구수도 우리나라 2763명, 미국 1400명, 일본 905명이다.
이씨의 자살 뒤 우정사업본부는 “고인은 나이가 많은 편이고, 평소에도 업무처리가 빠르지 않아 같은 팀 동료 집배원들은 배달 여건이 가장 수월한 배달 구역을 배정했으며, 우편물 구분 공동 작업 및 집배 구역 변경도 제외하는 등의 배려를 하였음”이라는 해명자료를 냈다. ‘느릿느릿 편하게 일했다’는 우정사업본부 해명은 그의 가족 및 동료들의 설명과 다르다. 숨진 이씨는 물량이 많아 가족이나 휴직 중인 동료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점심시간에는 화단에 쭈그려 앉아 김밥을 먹기도 했다. 명절 때는 링거를 맞으며 배달을 다녔다. 최근에는 담당 구역이 늘었다. ‘살인적인 중노동’이 예상되는 추석 명절을 앞두고 그는 (우정사업본부 표현에 따르면) “몸 상태와 추가 병가 사용 여부를 묻는” 전화를 받은 뒤 목숨을 끊었다.
유가족과 이병철 우정사업본부장 직무대행은 9월22일 고 이길연 집배원의 사망과 관련해 우정사업본부 사과, 진상조사위원회 구성, 자료 제출과 순직처리 협조, 책임자 처벌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합의했다. 유가족은 합의 이행이 온전히 완료될 때까지 장례를 치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시사IN 신선영 자살한 이길연씨의 동료 집배원이 한 아파트 단지에서 집배 업무를 하고 있다.
전혜원 기자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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