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노칼럼]장시간 노동은 노동자를 도구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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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집배노조 작성일17-11-22 09:58 조회3,91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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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장시간 노동은 노동자를 도구로 만든다
김철주 직업환경의학전문의(일터건강을 지키는 직업환경의학과 의사회)
승인 2017.11.21 08:00
▲ 김철주 직업환경의학전문의(일터건강을 지키는 직업환경의학과 의사회)
최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던 버스기사의 졸음운전 사망사고, 집배원 과로사·자살이 잇따르며 장시간 노동을 방조하는 근로기준법 59조(노동시간 특례업종) 개정이 사회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직업환경의학전문의로서 노동자 건강검진을 주로 하는 필자는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과도한 장시간 노동에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전문의가 되기 전까지 목도한 대표적인 장시간 근무자는 병원에서 3교대로 일하는 간호사였다. 그러나 취업 후 중소기업 노동자를 대상으로 건강검진을 수행하면서 3교대 근무보다는 2교대 근무 형태가 훨씬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전자산업이 대표적이며 24시간 가동되는 설비의 운전과 정비작업자들은 대부분 2교대 형태로 일을 하고 있었다. 주 5일만 일하더라도 현행법이 허용하는 주당 최장 근로시간인 52시간을 넘기게 되는데 주 6일 근무하는 사업장도 많았다. 택시나 경비업무는 상당수가 24시간 격일제 근무를 하고 있고 전세버스 같은 경우는 저녁 11시에 출근해서 오후 2시에 퇴근하는 형태도 있었다. 극단적인 장시간 작업자도 만날 수 있었다. 몇 달 전 만난 외국인 노동자는 2교대로 일하며 한 달에 단 하루도 휴일이 없었다. 물론 돈을 벌기 위해 본인이 선택했겠지만 장시간 노동이 뇌혈관질환을 유발한다는 것을 잘 아는 의사로서 가슴이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몇 주 전 만난 노동자는 공기업의 IT시스템 보안을 책임지는 하청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하루 24시간을 꼬박 근무해야 했다. 작업 특성상 수면을 취할 수는 없었다. 이런 경우는 일보다는 고문당하는 것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이렇게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로 우리나라 근기법이 연장근로를 포함해도 주 52시간 초과 노동을 금지하고 있지만 근기법 11조에 의해 4인 이하 사업장이 제외되고, 59조에 의해 운송업·방송업·보건업 등이 근로시간 특례로 분류돼 예외로 인정되며, 63조에 의해 농림수산업, 감시·단속적 근로, 관리감독 업무가 적용 제외된다. 둘째로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서 제외해 기업에 편의를 제공하고 법적 노동시간 초과에 대한 단속을 소홀이 하는 고용노동부의 입장이 장시간 노동을 방조하고 있다. 셋째로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노동자들 스스로 자신의 근무시간을 결정할 힘이 없어 기업이 원하는 대로 일을 할 수밖에 없고 이는 장시간 노동으로 이어진다. 넷째로 낮은 임금이 노동자들 스스로 장시간 노동에 뛰어들게 하고 있다.
이러한 장시간 노동은 결국 노동자들의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 가장 대표적인 업종이 택시다. 2016년 교통안전공단 통계에 의하면 서울시 택시 노동자의 52%는 60세 이상이고 고령으로 인해 고혈압·당뇨병 같은 만성질환 유병률이 높다. 운전시 불편한 자세와 장시간 노동은 근골격계질환 발생률을 높이고 소변을 참아야 하므로 비뇨기계 질환도 많이 발생하게 된다. 실제로 택시 노동자를 건강검진하면 다른 업종에 비해 혈압·당뇨, 콜레스테롤 수치 등이 높게 나오고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운동할 시간이 부족해 비만인 경우가 많으며 스트레스를 빨리 해소할 목적으로 흡연·음주에 의존하게 돼 2차적으로 간질환 등이 많이 발생하게 된다. 가장 안전해야 할 택시운송업이 건강상태가 가장 나쁜 노동자들에 의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일부 강제적인 장시간 노동은 인권침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몇 년 전 반도체 회사 건강검진에서 2교대로 일하는 일부 여성노동자들이 피로감을 심하게 호소하고 생리가 불순해지는 등 건강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자세하게 물어봤더니 그들이 12시간을 일하고 나서 회사에서 운영하는 사내 전문대학에서 4시간씩 강의를 듣고 잠을 거의 자지 못한 채 다시 일어나 일을 시작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원래는 3교대로 8시간씩 일하고 사내 전문대학 강의를 듣는 것으로 돼 있었으나 생산물량이 증가해 이렇게 돼 버린 것이다. 2교대를 3교대로 전환하거나 강의듣는 것을 중단하도록 설득했고 회사 보건관리자도 동조해 줬으나 그 회사는 결국 권고를 수용하지 않았다. 일부이겠지만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어린 여성노동자를 우리 사회는 이렇게 다루고 있다.
근기법 59조 개정 논의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진행 중이라 한다. 부디 특례업종이 폐기되길 바란다. 일부 사회적 문제가 된 업종을 제외하는 정도의 부분개정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전면 개정되더라도 가야 할 길이 많기에 장시간 노동이 바로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장시간 노동을 방치한다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해치고 이는 우리 사회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인간을 항상 목적으로 대하고 한낱 도구로서 대하지 않도록 행위하라고 했다. 부디 노동자가 한낱 도구가 되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지혜를 발휘하기를 바란다.
김철주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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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간 노동은 노동자를 도구로 만든다
김철주 직업환경의학전문의(일터건강을 지키는 직업환경의학과 의사회)
승인 2017.11.21 08:00
▲ 김철주 직업환경의학전문의(일터건강을 지키는 직업환경의학과 의사회)
최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던 버스기사의 졸음운전 사망사고, 집배원 과로사·자살이 잇따르며 장시간 노동을 방조하는 근로기준법 59조(노동시간 특례업종) 개정이 사회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직업환경의학전문의로서 노동자 건강검진을 주로 하는 필자는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과도한 장시간 노동에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전문의가 되기 전까지 목도한 대표적인 장시간 근무자는 병원에서 3교대로 일하는 간호사였다. 그러나 취업 후 중소기업 노동자를 대상으로 건강검진을 수행하면서 3교대 근무보다는 2교대 근무 형태가 훨씬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전자산업이 대표적이며 24시간 가동되는 설비의 운전과 정비작업자들은 대부분 2교대 형태로 일을 하고 있었다. 주 5일만 일하더라도 현행법이 허용하는 주당 최장 근로시간인 52시간을 넘기게 되는데 주 6일 근무하는 사업장도 많았다. 택시나 경비업무는 상당수가 24시간 격일제 근무를 하고 있고 전세버스 같은 경우는 저녁 11시에 출근해서 오후 2시에 퇴근하는 형태도 있었다. 극단적인 장시간 작업자도 만날 수 있었다. 몇 달 전 만난 외국인 노동자는 2교대로 일하며 한 달에 단 하루도 휴일이 없었다. 물론 돈을 벌기 위해 본인이 선택했겠지만 장시간 노동이 뇌혈관질환을 유발한다는 것을 잘 아는 의사로서 가슴이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몇 주 전 만난 노동자는 공기업의 IT시스템 보안을 책임지는 하청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하루 24시간을 꼬박 근무해야 했다. 작업 특성상 수면을 취할 수는 없었다. 이런 경우는 일보다는 고문당하는 것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이렇게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로 우리나라 근기법이 연장근로를 포함해도 주 52시간 초과 노동을 금지하고 있지만 근기법 11조에 의해 4인 이하 사업장이 제외되고, 59조에 의해 운송업·방송업·보건업 등이 근로시간 특례로 분류돼 예외로 인정되며, 63조에 의해 농림수산업, 감시·단속적 근로, 관리감독 업무가 적용 제외된다. 둘째로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서 제외해 기업에 편의를 제공하고 법적 노동시간 초과에 대한 단속을 소홀이 하는 고용노동부의 입장이 장시간 노동을 방조하고 있다. 셋째로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노동자들 스스로 자신의 근무시간을 결정할 힘이 없어 기업이 원하는 대로 일을 할 수밖에 없고 이는 장시간 노동으로 이어진다. 넷째로 낮은 임금이 노동자들 스스로 장시간 노동에 뛰어들게 하고 있다.
이러한 장시간 노동은 결국 노동자들의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 가장 대표적인 업종이 택시다. 2016년 교통안전공단 통계에 의하면 서울시 택시 노동자의 52%는 60세 이상이고 고령으로 인해 고혈압·당뇨병 같은 만성질환 유병률이 높다. 운전시 불편한 자세와 장시간 노동은 근골격계질환 발생률을 높이고 소변을 참아야 하므로 비뇨기계 질환도 많이 발생하게 된다. 실제로 택시 노동자를 건강검진하면 다른 업종에 비해 혈압·당뇨, 콜레스테롤 수치 등이 높게 나오고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운동할 시간이 부족해 비만인 경우가 많으며 스트레스를 빨리 해소할 목적으로 흡연·음주에 의존하게 돼 2차적으로 간질환 등이 많이 발생하게 된다. 가장 안전해야 할 택시운송업이 건강상태가 가장 나쁜 노동자들에 의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일부 강제적인 장시간 노동은 인권침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몇 년 전 반도체 회사 건강검진에서 2교대로 일하는 일부 여성노동자들이 피로감을 심하게 호소하고 생리가 불순해지는 등 건강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자세하게 물어봤더니 그들이 12시간을 일하고 나서 회사에서 운영하는 사내 전문대학에서 4시간씩 강의를 듣고 잠을 거의 자지 못한 채 다시 일어나 일을 시작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원래는 3교대로 8시간씩 일하고 사내 전문대학 강의를 듣는 것으로 돼 있었으나 생산물량이 증가해 이렇게 돼 버린 것이다. 2교대를 3교대로 전환하거나 강의듣는 것을 중단하도록 설득했고 회사 보건관리자도 동조해 줬으나 그 회사는 결국 권고를 수용하지 않았다. 일부이겠지만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어린 여성노동자를 우리 사회는 이렇게 다루고 있다.
근기법 59조 개정 논의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진행 중이라 한다. 부디 특례업종이 폐기되길 바란다. 일부 사회적 문제가 된 업종을 제외하는 정도의 부분개정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전면 개정되더라도 가야 할 길이 많기에 장시간 노동이 바로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장시간 노동을 방치한다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해치고 이는 우리 사회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인간을 항상 목적으로 대하고 한낱 도구로서 대하지 않도록 행위하라고 했다. 부디 노동자가 한낱 도구가 되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지혜를 발휘하기를 바란다.
김철주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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