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트 [김봉석의 문화유랑]정통과 파격, 모두를 아우르는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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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또또링2 작성일25-11-23 07:11 조회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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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영화 흥행 순위에서 흥미로운 점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인기다. 지난 9월24일 개봉한 <체인소맨: 레제편>은 312만명으로 6위이고, 3월 개봉 <극장판 진격의 거인 완결편 더 라스트 어택>은 94만명이다. 그 외에 <명탐정 코난: 척안의 잔상>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초화려! 작열하는 떡잎마을 댄서즈> <극장판 도라에몽: 진구의 그림이야기> 등 익숙한 일본 애니메이션들이 10만 넘는 관객을 기록했다.
돌이켜보면, 일본 애니메이션은 한국에서 늘 인기였다. 1967년 TBC의 한·일 합작 <황금박쥐>를 시작으로 1970년 <우주소년 아톰> 그리고 <마징가 Z>와 <요술공주 샐리> 등 일본 애니메이션은 세대를 넘어 한국 대중문화의 기저에 있었다. 1980년대에 폭력적이라며 로봇 애니 방영을 금지했어도 큰 영향은 없었다. 1990년대에는 <드래곤 볼>과 <슬램덩크> 중심으로 일본 만화 시장이 들끓었고 애니메이션도 화제였다. 다만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파괴력이 약했다. <명탐정 코난>과 <도라에몽> 등 아동 대상 애니 정도가 쏠쏠한 성적을 올렸다.
하지만 흐름은 변한다. 2023년 개봉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490만명을 기록했다. 1990년대에 만화 <슬램덩크>에 열광했던 3040 관객이 찾았고,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 관객들까지 끌어들였다. 걸작은 시대를 초월해 감동을 주고, 잘 만든 애니메이션은 아이들만 보는 오락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는 ‘시네마’가 될 수 있음을 입증한 것이다.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은 소년만화의 ‘왕도’의 길을 걷는 작품이다. 한때 600만부를 발행했던 만화 주간지 ‘소년점프’는 <드래곤 볼> <원피스> 등 우정과 노력, 승리의 소년만화로 1980년대 이후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강력한 적에 맞서 함께 싸우면서 친구가 되고, 승리를 바탕으로 성장해 더 강한 적과 맞서는 서사는 진부해 보일지라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귀멸의 칼날>은 가족애를 바탕으로 직관적인 선악 구도와 대결 그리고 매력적인 캐릭터를 변주해 한·일 양국에서 올해 최고의 흥행작이 되었다. 고전적 서사의 힘은 2025년의 대중에게도 유효하다.
<귀멸의 칼날>이 왕도를 걷는다면, <체인소맨>은 개성적인 아웃사이더다. <귀멸의 칼날>의 ‘탄지로’는 혈귀를 물리치고 여동생을 인간으로 되돌리겠다는 목적이 분명하다. <체인소맨>의 ‘덴지’는 그저 배불리 먹고, 사랑하고, 오늘을 잘 사는 것이 중요하다. 원초적이고 개인적인 욕망이 덴지를 움직인다. <체인소맨>의 작가인 후지모토 다쓰키의 세계는 기이하고 불친절하다. 플롯은 예상을 배반하고, 연출은 B급 영화처럼 거칠다. 노력하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전통적인 서사를 믿을 수 없는 시대, 상하좌우 엉망진창인 세상에서 오늘의 욕망에 충실한 덴지는 역설적으로 더 큰 공감과 해방감을 준다. 젊은층이 열광하는 이유다.
지난해 9월5일 개봉해 30만명이 본 <룩 백>과 올 10월24일부터 메가박스에서 상영한 <후지모토 타츠키 17-26>은 후지모토 다쓰키의 기이한 세계를 보여준다. SF, 판타지, 일상물을 넘나드는 도발적인 상상력은, 날것의 매력으로 마니아를 끌어들이고 점점 확장해 나간다. 동시에 후지모토의 세계 밑바닥에는 좋아하는 것에 대한 진심과 열정이 진하게 깔려 있다.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 산업은 전형적인 성공 공식을 따르는 메이저만 편애하지 않는다. <체인소맨>처럼 기괴하고 마이너한 감성의 작품도 연재 기회를 얻고, 독자의 반응을 얻으면 과감하게 애니메이션으로 뻗어간다. 메이저와 마이너, 왕도와 사도가 서로를 배척하지 않고 공존하며 거대한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힘은 보편적인 것과 실험적인 것 모두를 품어내고, 지원하며, 성공으로 이끄는 시스템 자체다. 성공을 부러워하며 ‘성공 법칙’만 따라 하지 말자. 결국은 다양성이고, 도전이다.
<전쟁과 책>은 영국 세인트앤드루스 대학 역사학과 교수로 책과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연구해온 앤드루 페테그리가 쓴 단행본이다. 저자는 20세기 서구 사회를 강타한 두 차례 세계대전을 전후한 시기에 책이라는 미디어가 어떻게 읽히고, 소비되고, 활용됐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풍부한 자료를 동원해 풀어낸다. 양장본과 페이퍼백 등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의 ‘책’만이 아니라 팸플릿, 정기간행물, 신문과 잡지 등 모든 종류의 ‘인쇄물’이 저자의 검토 대상이다.
‘전쟁’과 ‘책’이라는 두 단어의 조합은 전시에 불타거나 파괴된 책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지만, 책이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책과 출판, 도서관은 전쟁에 깊숙이 관여해왔다. 책은 타국과의 전쟁을 불사하게 만든 민족 이데올로기의 진원지였고, 출판과 도서관은 전쟁 승리를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주요 인프라였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독일에서는 독일 민족주의를 고취하는 시집들이 쏟아져나와 청년들의 전의를 자극했다. 영국에서는 <정글북>의 작가 러디어드 키플링과 그 추종자들의 책을 읽은 청년들이 대영 제국의 영광을 지키기 위해 전장으로 달려갔다. “책은 이데올로기의 온상이 되어 증오를 키우고 공격을 정당화하고 여론을 불러일으켰다.”
책을 교양의 상징으로만 이해하는 것도 단편적인 생각이다. 정치적 반대자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한 것으로 악명높은 스탈린은 모스크바의 아파트와 시골별장에 1만5000권의 장서를 보유했던 독서가였다. 히틀러는 초베스트셀러 <나의 투쟁>의 작가이자 책 수집가였다. ‘문화혁명’으로 지식인들을 숙청했던 마오쩌둥은 한때 도서관 사서였다.
정치 지도자들은 책을 파괴하는 것이 적국의 정신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1933년 히틀러는 반나치적이고 비독일적인 책들을 불태웠다. 유럽과 미국을 경악시킨 이른바 ‘베를린 분서’ 사건이다. 이를 두고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책은 사상의 전쟁을 위한 무기’라고 말했다. “어떤 인간도 어떤 무력도 이 세상에서 폭정에 저항해 온 인간의 영원한 투쟁을 구현하는 책을 앗아갈 수는 없습니다. 이 전쟁에서 책은 무기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1·2차 세계대전 시기 책은 전쟁의 일방적 피해자가 아니었다민족 이데올로기 온상 역할…출판과 도서관은 전쟁의 인프라무자비한 독재자 스탈린·히틀러가 책 수집광이었던 건 유명
기술과 정보가 승패를 좌우했던 양차 대전에서 도서관은 전쟁에 필요한 자료를 집적하는 저장고였다.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미국 의회도서관장을 지낸 아치볼드 매클리시는 1945년 “전쟁, 특히 현대전을 최대한 완벽하게 갖춘 도서관 자원 없이 치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진주만 공습 이후 미군이 태평양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치러야 했으나 태평양의 여러 섬들과 환초들에 대한 자료가 미국 도서관에 없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전시에 출판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정부의 선전 작업에 가담했다. 영국의 유명 서적상 W H 스미스는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223개 점포와 가판대 1500여개를 통해 1차 세계대전 내내 독일군의 사악함을 강조하는 팸플릿 등을 포함한 1억부가량의 선전물을 배포했다.
전쟁 기간은 출판업의 호황기이기도 했다. 독일의 나치 정권은 점령지의 군인들에게 책을 제공하기 위해 ‘프론트부크한델’이라는 이름의 전선 도서 서비스를 만들어 책을 공급했다. “1940년에는 2억4200만권, 1941년에는 압도적으로 증가한 3억4200만권을 출판했는데 이때가 독일 출판의 황금기였다.” 영국 출판사들은 종이 할당 등 규제로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전쟁 중 위안이 될 읽을거리를 찾는 독자들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종전 무렵에는 전쟁 초기보다 상황이 호전됐다. ‘문고판’ 혁명을 일으킨 펭귄북스는 2차 세계대전 발발 전 2년 동안 200종을 발행했으나 전쟁 기간 중 무려 600종을 추가로 발행했다. 2차 세계대전 중 미군들에게는 ‘진중문고’ 1억2200만부가 무료로 배포됐다.
전면전을 치렀던 2차 세계대전에서 각국이 포로들에게 책을 공급하기 위해 애썼다는 대목이 흥미롭다. 이는 전쟁포로에 대한 처우문제 등을 규정한 1921년 제네바합의에서 포로들이 “지적 유희”를 누릴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을 의무화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영국 공군 대위였던 방송 진행자 로버트 키는 독일 수용소에 갇혔던 3년 동안 영문학사의 정전들을 섭렵할 수 있었다. 독일 베스트팔렌주 뮌스터의 한 포로수용소에는 장서 7000권을 갖춘 도서관이 있었다. 미국에서는 독일군 전쟁포로를 위해 독일어 총서를 만드는 프로젝트가 가동됐다. 미국으로 망명한 독일 출판인과 펭귄북스 미국 지사가 협력한 이 총서에는 독일 문학의 탁월한 성취로 인정받는 작품들을 중심으로 어니스트 헤밍웨이나 조지프 콘래드의 일부 작품이 포함됐다. 의도가 순수하지만은 않았다. 이 총서는 나치를 추종하는 독일군 포로들에게 반나치 사상을 주입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획됐다.
전쟁 중 책이 파괴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나치 독일이 점령지에서 저지른 파괴 행위는 야만적이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독일군이 후퇴할 때 특히 큰 피해가 발생했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는 독일군이 철수 전날 화염방사기로 바르샤바공공도서관 장서들을 소각했다. 1944년 독일군이 후퇴할 때 벨라루스 내 책의 83퍼센트가 약탈됐고, 러시아의 스몰렌스크에서는 64만6000권이 재로 변했다. 아테네 국립도서관 장서 40만권이 불타거나 약탈당했고, 나폴리국립도서관은 전소됐다.
총수 자녀들의 회사에 일감을 몰아줬다며 공적거래위원회가 호반건설에 부과한 과징금 608억원 중 243억원이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20일 호반건설이 공정거래위원회 제재를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과징금 608억원 중 365억원을 취소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공정위는 2023년 6월 호반건설이 총수 김상열 회장의 두 아들 회사에 사업 기회를 주는 부당 내부거래를 했다며 시정명령과 과징금 608억원 처분을 내렸다.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호반건설은 2013∼2015년 유령회사에 가까운 계열사 여러 개를 세워 공공택지 입찰에 참여했다. 가까운 업체들을 많이 참여시켜 당첨 확률을 높이는 이른바 ‘벌떼 입찰’에 나선 결과 공공택지 23곳을 낙찰받은 건데, 이를 두 아들의 회사(호반건설주택·호반산업)에 양도했다. 공정위는 김 회장 장남과 차남의 회사 13곳이 5조8575억원의 분양매출과 1조3587억원의 분양이익을 거뒀다고 판단했다.
호반건설과 계열사들은 공정위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냈다. 서울고법은 공정위가 부과한 전체 과징금 608억원 중 60%에 해당하는 365억원을 취소하라고 지난 3월 판결했다. 준사법기관인 공정위 처분은 1심 판결과 같은 효력이 있어 불복 소송은 서울고법에서 진행된다.
당시 재판부는 “공정위가 지적한 4가지 위법 사항 중 공공택지 전매, 입찰 신청금 무이자 대여 행위 등 은 ‘부당한 이익을 제공한 행위’로 보기 어렵다”며 여기에 대한 과징금이 취소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사업비 보증 지원과 건설공사 무상 이관 부분에 대해선 과징금 부과 처분을 유지했다.
대법원 판단도 같았다. 대법원은 “부당한 이익제공 행위의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며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호반건설은 이날 판결 이후 입장문을 내고 “2019년 공정위 조사로 제기된 각종 의혹이 해소됨에 따라 앞으로 공정과 원칙을 기반으로 한 경영활동으로 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기업이 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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