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배원 과로사 대책이 위탁노동자들 '쥐어짜기?'
[경향신문] ㆍ계약 배달원 ‘주 52시간 근무’ 적용 안 받아 업무 부담 떠넘겨
ㆍ7월부터 물류지원단 소속 변경…노조 출범 동향 수집 물의도
경기 용인시의 ㄱ씨(42)는 우체국 소포를 배달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우체국 직원이 아닌 ‘위탁노동자’다. 예전에는 토요일에 하루 160~170개를 배달했는데, 지난달 28일에는 240개를 처리해야 했다. 새벽 5시에 나와서 오후 9시40분에야 일이 끝났다. 그는 “하루 350개를 배송하느라 오후 11시가 넘어서까지 일한 동료도 있었다”고 2일 말했다.
그가 일하는 우체국은 ‘과로사’ 문제가 불거진 뒤 집배원들의 토요 근무를 없앴다. 그래서 ㄱ씨 같은 위탁노동자들이 주말 일거리를 떠안게 됐다. 우체국 노동자는 우체국 소속 공무원인 집배원과 물류업체와 계약한 배달원으로 나뉜다. ㄱ씨 같은 이들은 명목상 개인사업자인 ‘특수고용노동자’들이다. 근로기준법이 바뀌어 주당 노동시간이 52시간 이하로 줄어들지만, 위탁노동자들에겐 ‘해당사항 없음’이다. 집배원 근무시간이 줄어들면 위탁노동자들의 부담은 더 늘어날 수 있다.
배달원들은 7월부터는 물류업체가 아닌 우정본부 산하 우체국물류지원단과 직접 계약한다. 우정본부는 5월 말까지 계약서를 새로 쓰기 위해 현재 배달원들과 수수료 등을 협의하고 있다. 배달원들은 우정본부가 집배원 과로사를 막을 근본적인 대책을 찾지 않은 채, 자신들 같은 위탁노동자들 ‘쥐어짜기’로 해결하려 한다고 주장한다.
우정본부는 직원 노조와 집배원들의 토요 배달을 폐지하고, 도시지역에선 토요일 소포 우편을 위탁으로 확대하는 방안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위탁노동자들은 “대책 없이 집배원 토요일 근무를 폐지하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위탁 배달원들에게 돌아올 것”이라며 걱정하고 있다. 진경호 전국택배연대노조(택배노조) 우체국본부장은 “집배원 근무조를 52시간 근무에 맞춰 짠 우체국들에서 배달원들에게 물량이 과도하게 쏟아지는 사례가 계속 나오고 있다”며 “앞으로 배달원들의 근무환경이 더 악화될까 심각하게 우려된다”고 말했다.
물류지원단이 최근 택배노조 동향을 수집하라는 지시를 전국 지사에 내린 것으로 알려지자 노조는 더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달 초 지원단에서 내려보낸 문건에는 배달원들의 단체 가입 현황과 성향을 적으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직접 계약 시 배달원 단체행동 등으로 인한 계약지연 상황 대비”가 목적이라면서, 진 본부장이 이끌던 전국우체국위탁택배협회를 ‘진경호 협회’로 지칭했다. 택배협회는 지난 1일 택배연대 소속 노조로 출범했다.
우정본부 관계자는 “배달원들과 물량 등을 논의 중이고, 집배원 근무시간을 줄이는 만큼 배달원도 더 늘릴 계획이어서 업무 부담이 배달원들에게 쏠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단체 가입 현황 정도는 조사해도 된다는 노무사의 자문도 받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노조는 배달원들의 파업 등 저항을 막기 위해 사실상 ‘사찰’을 지시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노조는 3일 광화문우체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배달원들의 노동실태를 알릴 계획이다.
<최미랑 기자 r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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