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하의 11월 23일 뉴스초점-집배원의 도둑맞은 시간
'그 많던 시간은 어디로 갔을까'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의 한 구절입니다.
정식 이름은 '모모, 시간도둑과 사람들에게 빼앗긴 시간을 돌려준 아이의 이상한 이야기'죠. 책은 1973년에 나왔지만 45년이 지난 지금, 시간도둑의 악몽은 현실이 됐습니다. 우정사업본부가 지난 3년간 집배원들의 초과근무 시간, 17만 시간을 도둑질한 게 드러났거든요.
인사 관리 시스템을 조작하거나, 집배원들의 초과근무 시간을 줄이거나, 심지어는 '0'으로 바꿔버리면서, 많게는 1인당 수백만 원을 지급하지 않은 겁니다. 조작 사실이 드러나기 전까지, '초과근무 시간을 조작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던 우정사업본부의 주장은 거짓이 됐죠.
이게 다가 아닙니다.
우정사업본부가 적용하고 있는 집배원의 배달 소요 표준시간을 보면, 입이 딱 벌어집니다.
이 규정에 따르면, 일반 우편물은 2.1초 안에 오토바이에서 내려 우편함에 넣어야 합니다. 등기는 28초, 소포는 30.7초 안에 해결해야 하죠.
주소 하나 읽는 데도 3초가 넘게 걸리는데, 이런 초 단위 계산법을 적용해 업무량을 배당하니, 말도 안 되는 과로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런 규정도 기가 막힌데 초과노동의 대가인 수당까지 깎아먹다니요. 그런데도 우정사업본부는 법정근로시간을 넘는 게 아니라며 항변하고 있습니다. 애초부터 현실과 동떨어진 규정을 들이대고 있는 우정사업본부에, 제대로 된 대책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거죠.
이런 상황에서 집배원들은 지금도 일본의 3배가 넘는 업무 강도를 견디고 있습니다. 부실한 실태조사로 문제를 방치하고 있는 동안, 집배원이 도둑맞는 건 시간이 아니라 소중한 목숨이 될지도 모릅니다. 이 규정을 들이대고 있는 분들께 2.1초 안에 우편물을 배달해보라고 꼭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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