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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노동자 연쇄 자살 미스터리, 강력한 처벌로 막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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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집배노조 작성일18-03-12 10:45 조회3,25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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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노동자 연쇄 자살 미스터리, 강력한 처벌로 막을 수 있나?

전주희 입력 2018.03.09. 12:03 댓글 0개

과로자살의 위험을 걷어내기 위하여 ⑦

[오마이뉴스 전주희 기자]

지난달 26일 고 임선빈 집배원이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고인을 포함해 지난 5년간 80여 명의 집배 노동자들이 뇌심혈관계 질환과 자살 등으로 사망했다. 한 사람의 죽음조차 다양한 원인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들 죽음은 수많은 원인 중에서 공통적인 한 장소를 지목하고 있다. 사람들의 안부를 묻는 소식들이 모이는 곳, '우체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더 이상 안녕하지 않다.

이 죽음의 기이함은 범인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살인으로 규정되지 않는다는 데있다. 노동자들은 자기 죽음으로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 지목했지만, 그 범인은 여전히 살아있는 노동자들의 삶을 지휘하고 있다.

오늘날 노동자들의 연쇄적인 죽음은 미스터리 스릴러물을 닮았다. 죽음은 이미 벌어졌고, 우리는 다음의 죽음을 예상한다. 죽음의 원인이 무엇인지, 범인이 누구인지도 모두 다 알고 있다. 그런데도 죽음 이후, 그러니까 살아있는 우리들이 죽음의 원인과 함께 공존하고 있다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것이야말로 미스터리하지 않은가?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2014년 10월부터 2017년 9월까지 3년간 전국 9개 우정청 중 서울, 강원청을 제외한 7개의 우정청에서 집배 노동자들의 초과 노동시간 중 17만 시간이 삭제되었다. 장시간 노동의 은폐를 위한 초과 노동시간의 조작은 집배 노동자들의 연쇄적인 죽음이 과로사가 아니라는 근거로 제출되기도 했다. 실제 우정본부는 작년 6월 경기 가평우체국 소속 집배 노동자가 뇌출혈로 사망했을 때 "우리는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주 52시간을 준수하고 있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4452명의 집배 노동자의 노동이 삭제된 17만 시간, 1일 8시간으로 환산하면 2만1250일, 이를 또다시 1년 365일로 환산하면 58년 2개월. 이들의 시간을 노동자들에게 되돌려 준다면, 아니 애초에 그들에게 그 시간을 강제하는 방식으로 강탈하지 않았다면 80여 명의 연쇄적인 죽음의 스릴러물은 상연되지 않았을까? 아니면 적어도 80명의 숫자가 채워지는 것을 고작 지연시킬 수 있을 뿐일지도 모른다.

삭제된, 17만 시간의 노동시간은 연쇄적인 죽음의 원인이라기보다는 더욱 더 근본적인 원인을 지목하는 '단서'다. 무엇이 노동자들로 하여금 17만 초과노동을 감수하게끔 했는지, 우정본부는 어떻게 집배 노동자들의 과도노동을 강제해왔는지를 밝혀내기 위한 단서 말이다.

집배노조는 박근혜 정부 당시 공공기관에 강요됐던 성과연봉제 도입이 초과근로시간을 축소, 조작하게 만든 주요한 원인이라고 지목한다. 문재인 정부 들어 공공부문의 성과연봉제는 폐기될 예정이지만 과도노동을 가능하게 하는 다양한 성과장치들과 장시간 노동을 가능하게 하는 법, 제도적 장치들이 존재하는 이상 노동자들의 연쇄적인 자살을 포함한 죽음은 예고될 수밖에 없다.

KT, 439명의 노동자 연쇄죽음의 아카이빙이 보여주는 것

KT노동인권센터는 2006년부터 자신들의 일터에서 일어나는 노동자 죽음의 사례를 아카이빙하기 시작했다. 2006년부터 2017년까지 439명의 죽음을 기록했다. 이들은 왜 하필 2006년이라는 시간에서 출발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들은 동료들의 죽음을 기록함으로써 그들의 죽음을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시간으로 기입하고자 한다.
 
KT노동인권센터와 '노동자의 벗' 소속 7명의 노무사는 2017년에 무려 1800여 쪽에 달하는 <KT노동인권백서>를 출간했다. 백서는 439명의 죽음이 KT 민영화와 노동탄압의 결과라고 그 원인을 지목했다.

"KT 민영화는 1980년대부터 그 정지작업이 시작돼 사업 분리, 분할 매각, 정부지분 축소 등을 거쳐 2002년에 정부 지분을 완전히 매각하면서 완료됐다. 그 이후 15년이 흘렀다. 처음에 정부는 민영화를 통해 경쟁을 도입하면 국민들에게 질 좋은 통신서비스를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민영화의 결과는 해악적이었다. 국민들은 높은 통신비 부담에 고통 받고, 노동자들은 끊임없는 구조조정과 실적 경쟁에 시달리며 죽음으로 내몰렸다." <KT 노동인권 백서> 중

2006년은 KT 내에서 CP라는 저성과자 퇴출 프로그램이 시행된 시기이다. 2002년 민영화되기 직전 7천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해고됐고, 민영화 이후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구조조정이 이어졌다.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으로 정리해고가 수차례 진행되어 4만 명이 퇴출당했다.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사측은 이후 '상시적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CP명단을 작성하고 이들을 지속적인 일터 괴롭힘과 강제적인 전환배치 등에 노출했다. 업무상의 저평가자를 일컫는 'C-플레이어들(C-player)'은 신자유주의가 내거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경영전략"이 탄생시킨 새로운 집단이자, 어떻게든 정리되어야 할 문제가 있는 집단으로 등장했다.

KT노동자들이 아카이빙한 죽음의 목록 중 눈에 띄는 것은 '명퇴 후 사망'과 '자살'이다. 통상 '노동자의 죽음'은 노동자의 신분이 그나마 유지되고 있는 상태에서의 죽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명퇴 후 죽음'까지 아카이빙한 것은 이들 죽음의 원인이 KT 민영화와 구조조정에 의한 것임을 뜻한다. 작업장 바깥에서 개별적으로 맞이하게 된 죽음을 다시 불러들여 2006년-KT라는 시공간에 다시 배치함으로써 KT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일터가 여전히 '죽음의 KT'임을 말하고 있다.

또 하나는 41건의 자살을 함께 포함한 것이다. 이 중에는 '저항'의 맥락에서 의미화할 수 있는 자살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과로자살은 그 자체로만 놓고 보면 입증하기 힘든 문제다. 자살이야말로 '나'의 온전한 선택이라는 허구적 믿음의 강력한 산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고통들과 함께 배치되었을 때 과로자살은 맥락화된다. 과로자살은 심리부검과 같은 접근으로 개인으로부터 자살 원인을 추적한다고 해서 해명될 수 없다. 즉, 과로자살은 자살의 문제가 아니라 과로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과로자살이 발생한 '장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다른 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래야만 노동자의 자살이 살아있는 노동자들의 고통과 함께 연결될 수 있다. 그러한 한에서 개별 노동자가 고통을 드러내는 양상 중의 하나의 경우로 자살을 선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구체성에 접근할 수 있다.

강제 전환배치와 일터 괴롭힘 등으로 인한 노동자 자살은 한국사회에서 과도노동 즉, 과로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우체국 노동자의 자살처럼 한국사회는 여전히 장시간 노동이 과도노동의 중요한 원인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장시간 노동은 오랜 관행처럼 이어져 온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장시간 노동과 구별된다.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민영화, 상시적인 구조조정이라는 맥락 하에 진행되고 있는 성과 프로그램들은 살인적인 노동강도를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것은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저항이 체계적으로 분쇄되어 노동자들이 개별화된다는 것에 있다. 성과 프로그램은 우체국과 KT에서 자본-노동 간의 갈등뿐만 아니라 노동자와 노동자들 사이의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관계를 무력하게 만드는 갈등의 원천이 된다. 우체국 관리직들은 자신들의 성과등급을 위해 집배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을 종용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장시간 노동을, 높은 노동강도를 압박해왔다. KT 노동자들의 일터 괴롭힘 역시 오직 자본에 의해서만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다.

한국사회에서 신자유주의는 장시간 노동의 보다 기술적인 적용으로 나아간다. 자본은 법정 노동시간을 준수하면서도 보다 촘촘한 망으로 노동성과를 압박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노동조합이나 현장 활동가들은 가장 먼저 타깃이 된다. 집합적 힘이 분쇄되었을 때 노동자들은 서로에게 무관심하며, 무력하다. 경쟁은 노동자들의 집단적 관계를 냉소적 관계로 대체한다.

집배 노동자들이나 KT 노동자들의 연쇄 자살은 과로자살의 또 다른 잔혹을 드러내준다. 어제의 동료들이 오늘에는 성과 프로그램의 실행자가 되거나 혹은 그 앞에서 침묵하게 될 때, 노동자들의 자살은 고독사를 닮는다.

강력한 처벌 이전에 '권리'를 보장해야

문재인 정부는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2022년까지 산재 사망자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선언한 뒤 따른 후속 조치다. 하지만 직무 스트레스나 일터 괴롭힘의 문제는 개정된 법안에서도 여전히 반영되지 않고 있다. 과로의 적극적인 해석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개정된 법마저 때늦은 법으로 당도해 버렸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강력한 법 집행을 위해 법의 적용대상을 확대하고 처벌을 강화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어떤 강력한 처벌도 노동자의 죽음이 발생한 그 장소에 당도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가장 발 빠른 집행자는 현장에 있는 노동자들이다. 이들의 집합적 힘을 모조리 분쇄한 뒤에, 강력한 법의 보호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법이 의무와 처벌만을 명시하는 순간 '치안'이 된다. 특히나 노동법이지 않은가. 노동의 권리야말로 법의 언어 속에 각인해야할 단어다. 그것이 없다면 노동의 보호란 자본 통제의 다른 이름이다. 함께 일한 동료가 죽었다면 그것도 연쇄적으로 죽었다면, 그 원인이 규명될 때까지는 중대재해 현장이다. 이에 대해 작업을 중지할 권리가 노동자에게 있어야 한다. 과로의 의미가 과도한 노동이라는 의미를 넘어서는 오늘날, 노동자들의 작업중지권이야말로 노동자들의 안전을 스스로 담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다. 문재인 정부가 진정 산재 사망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싶다면 노동자들이 스스로 작업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전주희님은 노동시간센터 회원입니다. 또한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에도 연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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